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대건 안드레아,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 (문단 편집) ==== 시성식 장소 ==== 어떤 의미에서는 기적 심사 면제나 성인명 변경보다도 더 큰 파격이었다. 시성식은 교황이 직접 주재하는 것이어서 [[성 베드로 대성당]]에서만 거행하는 것이 수세기 동안 이어진 원칙이었는데, [[아비뇽 유수]] 때를 제외하고 이 원칙이 깨진 첫 번째 사례가 바로 한국 103위 순교복자 시성이었기 때문이다. 당시 한국 가톨릭에서는 "교황 방한에 맞춰 시성식을 한국에서 열 수 없겠느냐?"라고 교황청 시성성에 청원했지만, 한국 103위 순교 복자 시성에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준 시성성도 시성식 장소에 대해서만큼은 "성 베드로 대성당 외의 장소에서 시성식이 열릴 경우 다른 지역 교회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그 상징성이 퇴색할 수 있다."라며 완강한 입장을 견지했다. [[파일:external/web.pbc.co.kr/308882_1.0_titleImage_1.jpg|width=500]] [[파일:103위성인시성식_전경-1984-0435-001.jpg]] 그런데 시성성의 입장과 상관없이 교황 [[요한 바오로 2세]]가 한국 방문 때 시성식을 열겠다고 친히 결정하면서 '한국에서 거행된 시성식'은 어디까지나 1984년 교황 방한 때의 부대 행사이지 주된 행사가 아니고, 시성성의 동의 없이 교황의 의지로 관철한 극히 예외적인 사례이므로 이는 시성식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변경이 아니며, 다른 나라 교회가 한국의 사례를 들어 자기 나라에서도 시성식을 거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구조가 정립되었다. 실제로 시성성 장관 피에트로 팔라치니 추기경, 차관 트라이안 크리샨 대주교(Traian Crișan, 1918년 5월 21일 ~ 1990년 11월 6일), 차관보 파비얀 페라야 주교(Fabijan Veraja, 1923년 1월 20일 ~ 2014년 10월 28일)는 한국에서 열린 시성식에 참석하지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